“마차도는 공격이 약한 선수가 아닙니다. 수비를 워낙 잘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공격이 덜 돋보인다는 건데 두고 보십시오. 마차도가 타격에서 큰 힘이 되어줄 것입니다.”
연습경기를 치르던 지난달 부산 사직구장에서 만난 성민규(38) 롯데 단장은 외국인 타자 딕슨 마차도(28·베네수엘라)에 대한 얘기가 나오자 자신 있게 말했다. 당시 ‘수비형 선수’라는 꼬리표가 붙어 있었던 마차도는 성 단장의 호언장담대로 개막과 함께 불방망이를 과시하고 있다.
5일 KT와 벌인 개막전에서 역전 3점 홈런으로 7대2 승리를 이끈 마차도는 8일 SK전에서도 신들린 듯한 타격감을 자랑했다. 6회 추격하는 적시타에 이어 8회엔 동점을 만드는 솔로 아치를 그렸다.
올 시즌 15타수 6안타로 4할 타율. 타점은 6개로 SK 한동민과 함께 공동 1위다.
마차도의 활약에 힘입어 롯데는 SK를 9대8로 꺾고 개막 이후 4연승을 질주했다. 지역 라이벌 NC 다이노스와 함께 공동 1위에 올라 있다.
작년 최하위 롯데의 놀라운 변신이다. 지난해와 올해가 다르다면 무엇이 바뀌었는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변화는 성민규 단장의 부임부터 시작됐다.
성 단장은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에서 스카우트로 10년간 경력을 쌓은 인물이다. 그는 작년 9월 롯데 단장으로 부임했다. 대구가 고향인 성 단장은 팀을 맡기 전까진 롯데란 구단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와서 보니 생각보다 훨씬 바꿔나가야 할 것들이 많았다고 했다.
성 단장은 일단 허문회 키움 히어로즈 수석코치에게 롯데 지휘봉을 맡겼다. 그는 “허문회 감독을 데려온 것은 롯데에서 진행한 많은 영입 중 가장 잘한 영입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허문회 감독은 시즌 개막과 함께 자신의 야구를 뚝심 있게 그려내고 있다. 자율성과 소통을 강조하면서 더그아웃이 끈끈해졌다. 올 시즌 타율 0.357, 1홈런 4타점으로 맹활약 중인 정훈은 “나는 주전이 아닌 백업 자리에서 경쟁하는 선수인데도 감독님이 나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감독님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서 마음이 쫓기지 않고 편하게 했더니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민규 단장은 스토브리그에서 누구보다 바삐 움직였다. 최고 히트 상품은 역시 안치홍(30)이다. KIA의 프랜차이즈 스타임에도 지난 시즌 부진하며 FA 시장에서 큰 관심을 받지 못하던 안치홍은 롯데와 ‘2+2’ 계약을 맺었다. KBO 최초로 계약서에 ‘옵트아웃’과 ‘바이아웃’ 조항을 써넣었다.
옵트아웃은 계약의 주체가 잔류 대신 계약의 소멸을 결정하는 권한. 보통 메이저리그에선 선수가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계약엔 선수와 구단이 모두 계약 연장 여부에 대해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바이아웃은 팀이 선수와 계약 연장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을 때 해당 선수에게 주는 보상금을 뜻한다.
결과적으로 롯데는 계약 규모를 줄이고, 안치홍은 2년 뒤 새로운 도전이 가능하게 된 절묘한 계약이었다. 기존 방식을 따르지 않고 보다 디테일하게 접근한 성 단장의 협상 능력이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그렇게 데려온 안치홍은 연습경기부터 펄펄 날았다. 자신의 주 포지션인 2루수로 활약하며 유격수 마차도와 함께 강력한 키스톤 콤비를 구축해 내야 수비를 안정시켰다.
안치홍은 8일 SK전에선 홈런 하나를 포함해 2안타로 팀 공격을 이끌었다. 연장 10회에선 볼넷으로 출루해 상대 투수의 폭투에 홈을 밟으며 4연승을 확정했다. 안치홍이 5번 타자를 맡으면서 롯데는 민병헌-전준우-손아섭-이대호-안치홍으로 이어지는 최강 타선을 구축할 수 있게 됐다.
성민규 단장의 디테일한 접근은 쓸데없이 돈만 많이 쓰고 성적은 나빴던 롯데를 바꾸고 있다. 선수단의 뎁스를 강조하는 성 단장은 팀의 미래인 2군 선수들에게도 신선한 방식으로 ‘당근’을 제시했다. 연습경기 성적을 평가해 고과에 반영했는데 그 항목이 흥미롭다.
타자들의 경우 OPS(출루율+장타율)와 낮은 삼진 비율, 높은 볼넷 비율, 이렇게 각각 세 항목의 최우수자들에게 연봉 인상을 약속했다. 투수는 FIP(수비무관자책)와 높은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 낮은 볼넷 비율이 기준이 됐다.
OPS를 중시하는 성 단장은 올 시즌 전광판에 타율 대신 OPS를 표시한다. 자신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롯데가 어떤 야구를 펼쳤으면 좋은지에 대해 선수들에게 간접적으로 알리는 셈이다.
‘나종덕 투수 변신 프로젝트’도 성 단장이 아니었다면 나오기 어려운 기획이었다. 작년 포수 포지션에서 에러를 남발하며 애를 먹었던 나종덕은 성 단장의 권유로 현재 2군에서 투수 훈련을 하고 있다. 보통의 경우라면 포수에서 투수로 전향하는 모험을 잘 하진 않지만, 성 단장은 나종덕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강한 어깨 등 투수로서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나종덕은 최근 2군 경기 등판에서 2이닝 2실점(1자책)을 기록했다.
사사구를 하나도 내주지 않은 제구력이 돋보였다. 성민규 단장은 “나종덕이 그대로 포수를 하더라도 이 투수 훈련이 자신감을 심어줘 좋은 포수가 되는데 밑거름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여러 가지 수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성민규 단장의 디테일한 접근은 꼭 야구에 관한 문제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사람을 챙길 때도 그런 면모가 잘 드러난다. 열정적으로 롯데를 응원하는 ‘사직 할아버지’로 유명했던 케리 마허(66) 전 영산대 교수는 정년퇴직을 하면서 취업비자가 만료돼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때 성 단장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를 롯데 외국인 선수·코치 매니저 겸 구단 홍보대사로 채용한 것이다.
마허는 외국인 선수와 가족이 한국과 KBO 리그에 적응하도록 돕는 일을 한다. 한국에 남아 자신이 좋아하는 롯데 구단에서 일을 하게 된 마허는 성 단장에게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 “무엇이든 시켜만 주면 구장 청소라도 하겠다”며 기뻐했다고 한다.
마당이 있는 자가격리 시설도 성 단장의 작품이다. 롯데의 외국인 선발 투수 아드리안 샘슨(29)은 최근 미국을 다녀왔다. 아버지의 병환이 깊어져 고민하고 있던 샘슨에게 성 단장은 흔쾌히 미국행을 권유했다.
샘슨이 미국을 다녀오면 국내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하고 이후 몸을 만드는 시간까지 계산하면 오랜 시간 선발로 나설 수 없지만, 성 단장은 사람 대 사람의 문제로 효자 샘슨의 마음을 먼저 어루만져 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고 한국으로 돌아온 샘슨은 구단이 특별히 마련한 한옥으로 들어갔다. 마당이 넓어 자가격리 중에도 투구 훈련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샘슨이 훈련을 충실히 소화한다면 격리가 풀리는 동시에 2군 등판에 나설 수 있다.
영화 ‘기생충’으로 아카데미상을 휩쓴 봉준호 감독의 별명은 디테일을 살린다고 해서 ‘봉테일’이다. 부임과 함께 세심하고 전략적인 접근으로 롯데를 바꾸고 있는 성민규 단장도 ‘성테일’이라 불릴 만하다.
개막을 앞두고 사직 구장에서 만났을 당시 마차도의 타격 실력을 자랑했던 성민규 단장은 기자에게 이런 예언도 했다. “샘슨이 정말 좋은 투수입니다. 롯데의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해낼 겁니다.” 샘슨까지 가세한 롯데는 또 어떤 모습일지 벌써 궁금해진다.
https://sports.v.daum.net/v/20200509074037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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