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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이 오실 때(When He Comes)

 
지금부터 약 2천 9백여 년 전, 시돈 남방 13킬로에 있던 페니키아인들의 항구도시인 사르밧에 한 가난한 과부가 아들 하나와 살고 있었습니다.

사르밧이란 "염색한다"는 뜻으로서 염색업이 발전한 상업 도시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사렙다"라고도 나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낯선 손님이 그녀를 찾아왔습니다. 사르밧은 번성한 도시 로서 주민이 많았지만, 가난한 과부인 그녀를 찾는 손님은 적었는데, 갑자기 손님이 온 것이었습니다.

그 손님은 여러모로 이상했습니다. 우선 페니키아 사람이 아닌, 이스라엘 남자였습니다. 누구의 소개로 온 것도 아니었고, 다짜고짜 찾아왔습니다. 잘못 찾아 온 게 아닌가 물었을 때, 맞게 찾아왔다고 했습니다. 더구나 찾아온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특별한 목적도 없는 것 같은데, 백 킬로도 넘는 거리를 걸어서 일부러 찾아오다니, 정말 이상한 손님이었습니다.

 
그는 이상했을 뿐만 아니라, 무례하기까지 했습니다. 과부의 사정은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먹을 것을 요구했습니다.

열왕기상 17장 11~12절은 이 대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가 가지러 갈 때에 엘리야가 그를 불러 이르되 청하건대 네 손의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그가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둘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이 무례한 손님이 누구입니까?
엘리야 선지자였습니다. 엘리야는 과부가 어려운 줄 알면서도 계속 음식을 요구했습니다.

여러분,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맞서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온 세상에 선포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선지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제단에 불을 내려 응답하 셨던 인물입니다.

그런 엘리야가 왜 이 먼 사르밧의 가난한 과부를 찾아온 것일까요? 그것도 곡식을 가져와서 과부에게 주어야 할 판인데, 오히려 가루 한 움큼이 전 재산인 과부에게 먹을 것을 먼저 가져오라고 무례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여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일의 특징이 담겨 있습니다. 엘리야가 과부를 찾아온 모습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시는 것과 닮았습니다.
 
우선 엘리야가 사르의 과부를 찾아갔듯이, 우리가 예수님을 찾아간 게 아니라, 예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서 사르까지 백 킬로 넘는 거리를 찾아갔다면,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부터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최장 거리의 심방 을 오셨다고 하겠습니다.
 
사르밧은 "옛 바알 왕이 다스리던 시돈 왕국" 안에 있었습니다.
엘리야 당
시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인 아합은 이스라엘의 모든 왕 중 가장 악한 왕으로 인식되는데, 그 이유는 그의 아내가 이세벨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세벨의 부친이 바로 시돈의 왕 엣바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본래 바알의 제사 장이었는데,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된 인물입니다. 그러니 당시 시돈은 바알 숭배의 본산지였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와 영적 대결을 벌여 여호와만이 참 신임을 선언한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바알의 본산인 시돈의 일부인 사르에 간 것처럼, 거룩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죄악의 세상에 사람 몸을 입고 오셨습
니다.
 
엘리야가 사전 통보 없이 갑자기 찾아간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갑자기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비록 구약 성경에서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이 예언되어 있었지만, 복음서의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갑자기 예수님과 마주쳤습니다.

예수 님께서는 갑자기 그들의 인생의 문을 노크하셨습니다.

또 엘리야가 가난한 과부의 처지를 무시하고, 자신에게 먼저 먹을 것을 내오라고 요구한 것처럼, 때때로 예수님께서도 무례한 요구를 하시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셨는가 하면, 부친이 죽었다는 제자에게는 "죽은 자는 죽은 자로 장례하게 하라"면서 당신을 따르라고 요구하기도 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이상한 손님처럼 여인에게 보내셨 을까요? 그리고 그로부터 수백 년이 지난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왜 당신의 아들 예수님을 인류 역사상 가장 이상한 손님으로 우리에게 보내셨을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다른 말로 바꾸면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엘리야가 온 이후 과부에게 엄청난 은혜가 임했습니다. 우선 그녀의 집에는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고, 이들은 극심한 가뭄에서 구원을 얻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여인이 어떻게 이런 하나님의 은혜를 얻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여인이 엘리야의 요구를 받아들여 자신들의 먹거리를 먼저 엘리야에게 드렸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한 결과였습니다. 엘리야의 요구와 여인의 순종을 열왕기상 17장 14~16절이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 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 대로 하였더니 그와 엘리야와 그의 식구가 여러 날 먹었으나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같이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 하니라"

여기 중요한 것은 "그가 가서 엘리야의 말대로 하였더니"입니다. 

 
여인은 이해할 수 없는 엘리야의 요구에 과감한 결단으로 순종하여 자신들의 마지막 음식을 엘리야에게 드렸고, 그 결과 그 가정의 식탁은 계속 풍성하였습니다. 엘리야가 가 져온 하나님의 은혜는 엄청났습니다. 여인은 겨우 한 끼 식사를 드렸지만, 하나님께서는 3년 6개월간의 길고 극심한 가뭄과 기근에서 여인과 아들을 구원하셨습니 다.
 
은혜는 이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얼마 후 그녀의 아들이 병들어 죽었습 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죽은 아들을 살려주셨습니다.

그 후 여인의 고백이 열왕기상 17장 24절에 나옵니다. "여인이 엘리야에게 이르되 내가 이제야 당신은 하나님의 사람이시요 당신의 입에 있는 여호와의 말씀이 진실한 줄 아노라 하니라"

 
예수님께서 오신 이유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갑자기 찾아오시고, 무례한 요구를 하듯 말씀하신 이유 역시 은혜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요구를 아멘으로 받은 이에게 구원의 은혜가 임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는 은혜가 아닌 것처럼, 무리한 요구인 것처럼 다가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따르라는 요구로 다가왔는데, 그들이 그 요구대로 따랐을 때,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제자가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나사렛의 처녀 마리아는 천사 가브리엘을 통해 다음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누가복음 1장 30~31절을 보면
"천사가 이르되 마리아여 무서워하지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느니라 보라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천사는 처녀가 아기를 낳는 것은 은혜라고 말했으니, 정말 이상한 은혜입니 다.

그런데 마리아가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순종했을 때, 하나님의 메시아의 모친이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하던 청년 사울에게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요구가 주어졌는데, 그는 이것은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로마서 15장 15~16절입 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 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 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결과 그는 위대한 복음의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마게도냐와 아가야 성도들에게는 예루살렘의 어려운 성도들을 위해 헌금 하라는 요구가 주어졌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6~7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디도를 권하여 그가 이미 너희 가운데서 시작하였은즉 이 은혜를 그대로 성취하게 하라 하였노라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 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지니라" 아멘.

이들은 어려운 중에도 풍성하게 헌금을 드림으로써 헌신과 사랑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역사 이래 가장 이상한 손님이며,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이십니 다. 그분은 주인의 비위를 맞추지 않으시고, 오히려 무리한 요구를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품에는 말할 수 없는 은혜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는 자,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부할 때, 그 요구를 거절할 때, 은혜도 비켜 가게 될 것입니다.

본문이 그런 슬픈 예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당신께서 성장하신 나 사렛 회당에서 설교하셨습니다. 유명한 메시아 예언인 이사야 61장 1절 이하를 읽 으신 후에 이 말씀이 이루어졌다고 하셨습니다.

본문 21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아멘.
메시아 예언인 이 말씀이 그들의 귀에 응했다. 즉 이루어졌다는 말씀은 예수님 당신 자신 이 메시아라는 선언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지 못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생각했던 그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못했고, 배척했습 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은혜가 어떤 이에게 임하는지에 대해 두 사람의 예를 드 셨는데, 앞에서 말씀드린 사르의 과부와 아람의 군대 장관 나아만이었습니다.

25~27절입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 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당연히 은혜를 받는 게 아닙니다. 은혜는 전혀 예상치 못 한 이방의 과부와 장군에게 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만약 엘리야가 과부를 찾아가 지 않았더라면, 과부와 아들은 죽었을 것입니다. 나아만이 엘리사에게 오지 않았더라면 그는 나병으로 죽었을 것입니다. 이 만남은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구에겐가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진다면, 그건 정말 특별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주님의 은혜가 찾아온다는 것은 특별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복음이 전해진 것,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신 것은 정말 특별한 것입 니다.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노크하시는 특별한 순간에 우리가 할 일은 무엇일 까요? 그것은 버선발로 달려나가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 니"라고 하십니다. 언제나 주님을 영접합시다.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셔 들입시 다. 그리고 주님의 무리해 보이는 말씀에도 기쁨으로 순종합시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구원을 얻고, 상상할 수 없는 은혜가 임할 것입니 다. 환난 중에도 기뻐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시기 전에 먼저 엄청난 것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 한 방울, 피 한 방울까 지 다 주셨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사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이런 면에서 보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을 거부하는 사람이요, 하나는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훨씬 적습니다.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은 적습니다. 우리를 그 길로 걷게 하신 하나 님을 찬양합니다. 주님은 지금도 계속해서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낮에도, 밤에도 오십니다.
주님은 "오시는 하나님, The Coming God"이십니다.

흉년이 끝날 때까지 과부의 집에 엘리야가 머물렀던 것처럼, 이 험한 세상의 삶이 끝나고 영원한 천국 문에 들어설 때까지 우리 인생에 주님께서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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